Story
-
19Story/Short 2019. 9. 13. 00:44
모르고 살았네.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조차. 세상이 이렇게 어지럽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이렇게나 많은데 나 혼자 잘 살겠다고 공부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 고작 회사에 들어가서 반도체나 깔짝깔짝 하자고 나는 대학에 왔나. 진정한 지성인이라면 행동해야 한다. 내 일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불의하다면 발 벗고 나설 수 있고 또 정부와 학교가 나의 신념과 다르다면 자기 이름 석자를 걸고 당당히 다른 학생들과 토론할 수 있어야 하며 끊임없이 사회에서의 나의 역할을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학교 아니 나는 어떠한가. 그저 하루를 때워가기에 바빠 나 하나 건실하자고 죽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율전에는 단 한 번이라도 이런 활발한 토론의 장이 있던 적이 있었던가. 정말 처음으로 우리 학교가 부..
-
18Story/Short 2019. 9. 13. 00:39
밤늦게 누구를 기다리다가 어떤 한 남매를 보게 되었다. 소주 판촉원으로 보이는 그들은 밤 1시가 넘은 시간이 돼서야 비로소 집채만 한 캐리어를 두 손으로 들고 집으로 향한다. 고달픈 그들의 삶을 관조하며 생각한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저 청춘은 얼마냐 안쓰럽고 가냘프더냐. 세상의 온갖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저 두 어깨가 참 안쓰럽다. 저 어깨의 무거운 짐 내가 조금만이라도 들어줄 수 있었으면. 지친 하루의 끝에 미처 다 팔지 못한 팸플릿을 해진 캐리어에 꾸깃꾸깃 집어넣으며 그들은 얼마나 좌절했으랴. 이제껏 삶은 그대에게 얼마나 혹독했으랴. 그는 내일의 삶과 내 밑의 가족을 생각하며 쓸쓸한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는다. 멀어져 가는 캐리어를 바라보며 나는 소리 없이 운다.
-
2Story/Long 2019. 9. 13. 00:31
늦게까지 시험공부를 하다가 아침 해가 뜰 때쯤 집에 들어온다. 남들보다 늦게 문을 닫는 나의 하루에 무엇을 바라겠냐만은 삶에 반쯤 지쳐 약간의 기대와 함께 현관문을 열면 밤새 식어버린 차가운 공기와 센서등 하나만이 나를 반길 뿐이다. 그래도 이거라도 나를 반겨주는 것이 어디냐. 적막이 흐르고 이런저런 생각에 자기 전에 캔맥주 하나를 딴다. 어느 순간부터 내 인생에는 주황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요즈음의 나는 넘어지기 직전의 팽이 같다. 나는 멈춰야 할까 계속해서 가야 할까. 차라리 빨간불이었으면 멈추기라도 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의 삶엔 내가 없다. 지금 하는 공부, 지금 하는 일, 지금 내가 지고 가야 할 책임. 모두 하나의 소실점으로 수렴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소실점에 도달한 순..
-
14Story/Short 2019. 9. 13. 00:20
벚꽃은 참 아름답다. 늦은 밤 벚꽃나무에 둥그런 달빛이 비치면 마치 은색 자수가 박힌 한 폭의 아름다운 비단을 보는 느낌이다. 그런데 사실 벚꽃의 진짜 아름다움은 아이러니 하게도 꽃이 그 수명을 다 할 때에 있다. 벚꽃은 1년 동안 자신의 정체를 꼭꼭 숨긴다. 하지만 때가 되면 자기가 가장 빛날 시기가 오면 그는 피어난다. 그리고 그는 그토록 기다려왔던 그의 아름다움을 그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려놓는다. 꽃이 지는 것이 아닌 꽃잎을 떨어뜨림으로써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벚꽃이 좋다. 남들이 피고 질 때 부화뇌동 하지않고 묵묵히 자신의 때를 기다리는 모습이 때가 되면 피어나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그 모습이, 그리고 가장 아름다울 때 떠나는 그의 모습이 정말 좋다. 그래서 벚꽃을..
-
13Story/Short 2019. 9. 13. 00:16
가끔 나와 비슷한 사람을 볼 때면 기분이 묘하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자기 자신도 이를 알고 있지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워 넣는 그런 바보 같은 작태를 보고 있자면 실로 놀랍다. 남도 나를 볼 때 이렇게 느끼려나. 물론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기분이 오묘할뿐이다. 가지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멀어지는. 해결하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그 늪을 메우려고 하지 말고 비워내려 하면 된다. 하지만 요즈음의 나를 보면 비워내기는 커녕 점점 더 밑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이 늪이 나를 삼킬 것 같은 확실하고 자명한 예지몽. 어지럽다.
-
-
-